구로사와 키요시, 수오 마사유키, 나카다 히데오를 키워낸 로망 포르노는 수많은 감독들이 한 제작사의 제작 방침을 따라 방대한 양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세계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예라 할 수 있다. 70년대 일본영화의 불황과도 관계가 있는 닛카츠의 로망 포르노는 시간이 흐를수록 발견과 발굴을 거치며 일본영화사의 중요한 순간이 되었다. 이와 함께 정치적 비평에 전복적인 해석이 더해지며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인 역할만이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활약한 감독들의 ‘어떤’ 영화들은 정당한 평가를 받을 자격이 분명히 있다. <흑장미승천>은 닛카츠의 로망포르노 가운데 가장 빛나는 이름의 하나인 쿠마시로 타츠미 감독의 가작이다. 명성을 얻은 뒤 일반 극영화로 진출했던 대부분의 다른 감독들과 달리 오직 로망포르노만을 고집하면서 인상적인 여운을 만들어낸 그의 영화들 가운데서 이 작품은 카메라 뒤편의 제작진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이 흥미를 더한다. 야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스텝들과 그들을 따라 도시를 방황하는 카메라 그리고 원경으로 잡힌 여인의 누드는 지금도 불가사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권용민)